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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문장이 머무는 집을 짓는 동안 (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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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한결 댓글 0건 조회 64회 작성일 26-08-05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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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홈페이지를 만드는 데 닷새가 걸렸다. 처음에는 쉬운 일인 줄 알았다. 책 표지와 소개문을 보기 좋게 앉히고, 저자와 독자를 이어 줄 버튼 몇 개를 만들면 되는 일. 이미 완성된 책들을 화면 위로 옮겨 놓는 단순한 작업이라 여겼다. 그러나 첫날이 저물기도 전에 알게 되었다. 책이 머물 집을 짓는 일은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책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섬세한 질서로 이루어지듯, 홈페이지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코드의 문장 위에 세워지고 있었다.

코드는 엄격한 편집자 같았다. 쉼표 하나가 빠지면 명령이 멈추었고, 괄호 하나를 닫지 않으면 그 아래의 세계가 통째로 흔들렸다. 사람은 문맥을 헤아려 서툰 말도 대강 알아듣지만, 코드는 내 의도를 짐작해 주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정확히 적었는지만 받아들였다. 이 정도면 뜻이 통하겠지 하는 안일함은 어김없이 오류가 되어 돌아왔다. 몇 시간을 들여 정리한 신간 목록이 갑자기 흐트러졌고, 책 표지는 엉뚱한 비율로 늘어났다. 하나를 바로잡으면 다른 하나가 어긋났다. 다 고쳤다고 안도하는 순간, 더 깊은 곳에서 새로운 오류가 고개를 내밀었다.

둘째 날부터 나는 컴퓨터 앞에서 자주 손을 멈추었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얹은 채, 내가 살아온 날들에도 이런 오류가 있지 않았는지 생각했다. 끝맺지 못한 관계, 미뤄 둔 사과, 시작만 해 놓고 외면한 약속들. 당장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남아 있다가 뜻하지 않은 순간, 오늘의 문장을 어긋나게 했다. 오래전에 빠뜨린 작은 기호 하나가 시간을 건너와 지금의 질서를 흔드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여러 차례 교정을 거치듯, 사람도 때때로 저 자신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무엇을 잘못 썼는지만이 아니라, 무엇을 끝내 읽지 않으려 했는지도.

셋째 날에는 홈페이지의 얼개를 처음부터 다시 살폈다. 펴낸 책과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화면에 모두 담으려 하자 페이지는 금세 숨이 막혔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뒤섞여, 독자는 어디에 시선을 멈춰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비우는 일 또한 편집임을 배웠다. 좋은 홈페이지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 주는 곳이 아니라, 독자가 한 권의 책을 온전히 바라보도록 기다려 주는 곳이었다. 여백은 낭비된 자리가 아니었다. 표지가 제 빛을 내고, 소개 문장이 숨을 쉬고, 한 사람의 눈길이 잠시 머물도록 마련한 침묵의 자리였다. 좋은 책도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작가가 남겨 둔 여백에서 독자는 제 기억과 물음을 꺼내 놓는다.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채우기만 한 삶에는 정작 제가 머물 자리가 없다. 결핍인 줄만 알았던 비움이 오히려 삶을 선명하게 하는 여백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빈 화면을 바라보며 조금씩 익혀 갔다.

넷째 날, 홈페이지는 제법 단정해졌다. 그러나 내 컴퓨터에서 잘 보인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휴대전화로 열어 보니 가지런하던 서가가 금세 흐트러졌다. 표지는 화면 밖으로 밀려나고 글자는 지나치게 작아졌으며, 버튼은 손가락이 닿기 어려운 자리에 가 있었다. 나에게 완전해 보이던 세계가 다른 이의 자리에서는 불편한 세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만든 공간을 독자의 눈으로 다시 보아야 했다. 나이 든 독자도 편히 읽을 수 있는지, 처음 찾아온 사람도 길을 잃지 않는지. 사람의 마음도 이와 닮았다. 우리는 흔히 제 뜻이 선했다는 이유로 상대가 겪은 불편을 가볍게 여긴다. 그러나 관계를 이루는 것은 내가 보낸 마음만이 아니라 상대가 받아 든 경험이다. 책이 저자의 손을 떠나 독자의 읽기 속에서 새로 태어나듯, 우리의 말도 타인의 마음에 닿은 뒤에야 비로소 제 뜻을 얻는다.

닷새째 되는 날, 마침내 홈페이지가 열렸다. 주소를 넣자 책들이 한 권씩 모습을 드러냈고, 버튼들은 약속된 자리로 독자를 안내했다. 팡파르는 없었다. 홈페이지는 한 권의 책처럼 조용히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누르지 못했다. 완성된 화면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 것은 그 뒤에 숨은 시간이었다. 수없이 지웠다가 다시 쓴 소개문, 글자 하나의 크기를 두고 망설이던 저녁, 원인을 찾지 못해 막막했던 밤. 방문자는 정돈된 화면만 보겠지만, 나는 그 아래 겹겹이 쌓인 실패의 흔적을 알고 있었다. 한 권의 책도 그럴 것이다. 독자는 매끄럽게 인쇄된 문장을 읽지만, 그 뒤에는 작가가 버린 수많은 문장과 편집자의 질문과 교정지의 붉은 표시가 있다. 완성이란 실패가 없었던 상태가 아니라, 수많은 실패가 제자리를 찾아 하나의 질서가 된 상태에 가깝다.

닷새 동안 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은 홈페이지가 나를 다시 편집한 시간이었다. 조급함을 덜어 내고 그 자리에 기다림을 써 넣었으며, 고집스러운 문장을 고쳐 타인을 위한 여백을 만들었다. 오류 앞에서 창을 닫는 대신 그 까닭을 오래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다. 삶도 영원히 초판에 머물지 않는 한 권의 책일 것이다. 어떤 날에는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듯하다가도 사소한 일 하나로 마음의 배열이 무너진다. 그렇다고 생 전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다시 읽고 바로잡아야 할 한 줄이 생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류 없는 생을 사는 일이 아니라, 오류를 발견했을 때 책을 덮지 않는 일이다.

닷새 뒤, 화면에는 작은 문 하나가 남았다. 책과 독자가 만나게 될 문이다. 그리고 내 안에는 그보다 오래 남을 문장 하나가 새겨졌다. 삶은 한 번에 완성되는 책이 아니라, 고쳐 쓰기를 멈추지 않는 책이라는 것. 오늘도 나는 어딘가 한 줄을 고치며 산다.

※ 이곳에 실린 글은 작가가 책으로 엮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원고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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