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안에서 잠긴 문 (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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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여행을 이틀 앞둔 밤, 그의 모니터에는 분 단위로 쪼개진 일정표가 빼곡했다. 이동 동선과 식당 휴무일, 예상 대기 시간, 날씨가 바뀔 경우의 대체 경로까지. 그에게 여행이란 예외라는 변수가 비집고 들 틈이 없도록 정교하게 다듬어진 하나의 작품이어야 했다. 동행할 친구들은 대충 가서 먹고 쉬자며 웃어넘겼지만, 그는 그 대충이라는 말이 품은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여행 당일,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고속도로는 사고로 막혔고, 예약해 둔 식당에는 이십 분이나 늦게 닿았다.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직원의 건조한 한마디에 그의 평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손끝이 떨렸다. 친구들은 괜찮다고, 눈에 띄는 데 아무 데나 들어가자고 다독였지만, 그에게는 조금도 괜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 아무 데는 검증되지 않은 곳, 완벽한 계획표에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온몸에 가시를 세웠다. 조수석에서 한숨을 몰아쉬고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며, 다른 식당을 찾느라 휴대폰 화면에 얼굴을 묻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도, 친구들의 다정한 농담도 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계획이 틀어졌다는 한 가지 사실에 붙들려 스스로를 들볶으면서, 그는 자기가 일으킨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 왜 하필 오늘 사고가 났을까. 왜 저 식당은 융통성이 없을까. 원망은 바깥을 향했고, 분노는 안에서 자랐다.
어느 순간, 차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것을 그도 피부로 느꼈다. 돌아보니 뒷좌석의 친구들이 굳은 얼굴로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웃음으로 채워졌어야 할 길이 그의 탄식과 숨 막히는 정적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알았다. 이 여행을 망치고 있는 것은 막힌 도로도, 예약을 취소한 식당도 아니었다. 제 안에 똬리를 튼 고집, 완벽이라는 이름의 강박이었다.
돌아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의 민낯은 의외로 단순하다. 과도한 일 때문에, 야속한 사람 때문에, 짓누르는 형편 때문에 괴롭다고 말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보면 사람을 가장 지독하게 괴롭히는 것은 바깥의 비바람이 아니라 제 안에서 일으킨 풍랑이다.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는, 내 기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고집이 제 목을 죈다. 정작 세상은 그저 흘러갈 뿐인데, 안의 기준을 내려놓지 못하는 완고함이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곤 하는 것이다.
더 슬픈 것은, 이 강박이 자기 하나를 갉아먹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 안의 감옥에 갇힌 사람은 타인의 표정을 읽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를 어긋난 것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성실한 사람이라 여겼지만, 친구들의 눈에 비친 그는 제 성미를 이기지 못해 차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제 괴로움에 골몰하느라, 곁에 있는 이들의 하루가 무너지고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어디 여행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겠는가. 물건이 제자리에 놓이지 않았다고 한숨으로 식구를 누르는 사람, 문장 하나가 거슬려 자리의 공기를 굳히는 사람. 저마다 제 기준의 정교함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실은 제 안의 모난 구석을 품지 못해 밖으로 쏟아 내고 있을 뿐이다. 나 또한 그 자리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그날 그는 마침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눈앞의 이름 모를 작은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계획에 없던 집이었고 메뉴도 단출했다. 그러나 김이 오르는 국수를 사이에 두고 친구들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그는 비로소 깊은 숨을 내쉬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끈을 슬그머니 놓아 버리자, 그제야 창밖의 바람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편안한 웃음이 귀에 들어왔다. 국수는 특별할 것 없는 맛이었는데, 그에게는 이상하게 오래 남는 한 그릇이 되었다.
마음이 갇히는 감옥의 문은 언제나 안쪽에서 잠긴다. 바깥의 누구도 그 문을 잠근 적이 없고, 그러니 그 문고리를 돌릴 수 있는 손도 오직 하나, 제 손뿐이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인생이 무너지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은 남에게 너그러워지는 일이기 이전에, 저 자신을 너그러이 품는 일이다. 스스로를 품을 줄 아는 사람 곁에서, 비로소 다른 이들도 마음 놓고 숨을 쉰다.
그날의 일정표는 결국 절반도 지켜지지 못했다. 그런데 그 여행에서 끝내 남은 것은 정교하게 세운 계획이 아니라, 계획 바깥에서 만난 국수 한 그릇과 친구들의 웃음소리였다. 그는 요즘도 여행을 앞두면 버릇처럼 일정표를 만든다. 다만 이제는 맨 아래에 한 줄을 비워 둔다. 그 빈칸으로 무엇이 들어올지는 그도 모른다. 모르는 채로 두는 연습을, 그도 나도 하고 있는 중이다.
여행 당일,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고속도로는 사고로 막혔고, 예약해 둔 식당에는 이십 분이나 늦게 닿았다.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직원의 건조한 한마디에 그의 평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손끝이 떨렸다. 친구들은 괜찮다고, 눈에 띄는 데 아무 데나 들어가자고 다독였지만, 그에게는 조금도 괜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 아무 데는 검증되지 않은 곳, 완벽한 계획표에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온몸에 가시를 세웠다. 조수석에서 한숨을 몰아쉬고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며, 다른 식당을 찾느라 휴대폰 화면에 얼굴을 묻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도, 친구들의 다정한 농담도 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계획이 틀어졌다는 한 가지 사실에 붙들려 스스로를 들볶으면서, 그는 자기가 일으킨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 왜 하필 오늘 사고가 났을까. 왜 저 식당은 융통성이 없을까. 원망은 바깥을 향했고, 분노는 안에서 자랐다.
어느 순간, 차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것을 그도 피부로 느꼈다. 돌아보니 뒷좌석의 친구들이 굳은 얼굴로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웃음으로 채워졌어야 할 길이 그의 탄식과 숨 막히는 정적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알았다. 이 여행을 망치고 있는 것은 막힌 도로도, 예약을 취소한 식당도 아니었다. 제 안에 똬리를 튼 고집, 완벽이라는 이름의 강박이었다.
돌아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의 민낯은 의외로 단순하다. 과도한 일 때문에, 야속한 사람 때문에, 짓누르는 형편 때문에 괴롭다고 말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보면 사람을 가장 지독하게 괴롭히는 것은 바깥의 비바람이 아니라 제 안에서 일으킨 풍랑이다.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는, 내 기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고집이 제 목을 죈다. 정작 세상은 그저 흘러갈 뿐인데, 안의 기준을 내려놓지 못하는 완고함이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곤 하는 것이다.
더 슬픈 것은, 이 강박이 자기 하나를 갉아먹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 안의 감옥에 갇힌 사람은 타인의 표정을 읽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를 어긋난 것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성실한 사람이라 여겼지만, 친구들의 눈에 비친 그는 제 성미를 이기지 못해 차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제 괴로움에 골몰하느라, 곁에 있는 이들의 하루가 무너지고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어디 여행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겠는가. 물건이 제자리에 놓이지 않았다고 한숨으로 식구를 누르는 사람, 문장 하나가 거슬려 자리의 공기를 굳히는 사람. 저마다 제 기준의 정교함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실은 제 안의 모난 구석을 품지 못해 밖으로 쏟아 내고 있을 뿐이다. 나 또한 그 자리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그날 그는 마침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눈앞의 이름 모를 작은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계획에 없던 집이었고 메뉴도 단출했다. 그러나 김이 오르는 국수를 사이에 두고 친구들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그는 비로소 깊은 숨을 내쉬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끈을 슬그머니 놓아 버리자, 그제야 창밖의 바람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편안한 웃음이 귀에 들어왔다. 국수는 특별할 것 없는 맛이었는데, 그에게는 이상하게 오래 남는 한 그릇이 되었다.
마음이 갇히는 감옥의 문은 언제나 안쪽에서 잠긴다. 바깥의 누구도 그 문을 잠근 적이 없고, 그러니 그 문고리를 돌릴 수 있는 손도 오직 하나, 제 손뿐이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인생이 무너지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은 남에게 너그러워지는 일이기 이전에, 저 자신을 너그러이 품는 일이다. 스스로를 품을 줄 아는 사람 곁에서, 비로소 다른 이들도 마음 놓고 숨을 쉰다.
그날의 일정표는 결국 절반도 지켜지지 못했다. 그런데 그 여행에서 끝내 남은 것은 정교하게 세운 계획이 아니라, 계획 바깥에서 만난 국수 한 그릇과 친구들의 웃음소리였다. 그는 요즘도 여행을 앞두면 버릇처럼 일정표를 만든다. 다만 이제는 맨 아래에 한 줄을 비워 둔다. 그 빈칸으로 무엇이 들어올지는 그도 모른다. 모르는 채로 두는 연습을, 그도 나도 하고 있는 중이다.
※ 이곳에 실린 글은 작가가 책으로 엮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원고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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