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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안고 걷는 아침 (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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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한결 댓글 0건 조회 35회 작성일 26-08-14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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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 반이면 눈이 떠진다. 자명종보다 먼저 또리가 마룻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열아홉 살 노견의 발톱 소리는 힘이 없어서, 긁는다기보다 쓰다듬는 소리에 가깝다. 그 소리에 일어나 하루를 연다. 그리고 일곱 시가 되면 집을 나선다. 옷을 걸치는 기척만으로 셋째 복남이가 어느새 현관 앞에 나가 앉아 있다. 그러면 나는 둘째 카카오를 품에 안는다. 열한 살 카카오는 몇 달 전 당뇨 진단을 받았고, 합병증으로 백내장이 빠르게 깊어져 이제 눈이 보이지 않는다. 앞이 캄캄한 아이에게 바깥길은 온통 낯선 벽이어서, 혼자서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한다. 그래서 산책길에는 늘 내 품이 아이의 길이 된다.

우리 넷의 아침 산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걷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걷는다. 거를 수 없는 일이다. 밥은 한 끼 굶을 수 있어도 이 길은 굶을 수 없다. 또리는 뒷다리에 힘이 빠져 걸음이 자꾸 옆으로 기운다. 취한 사람처럼 흔들리며 걷다가 제풀에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기다린다. 복남이도 저만치 앞서가다 돌아서서 기다린다. 사 년 전 비닐하우스 귀퉁이 짚단 위에서 자던 아이가, 이제는 식구의 걸음을 살필 줄 아는 개가 되었다.

품에 안긴 카카오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코를 든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세상을 코로 본다. 논둑을 지날 때는 흙냄새를, 이장님 댁 앞을 지날 때는 아궁이 냄새를, 개울가에 이르면 물비린내를 읽는다. 콧등이 실룩거릴 때마다 나는 아이가 지금 어디쯤을 보고 있는지 짐작한다. 눈을 잃은 아이를 안고 걸으며 나는 아이의 눈이 되고, 아이는 나의 코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모자란 데를 빌려 쓰며 한 길을 간다.

산책에서 돌아오면 밥을 먹인다. 카카오가 밥그릇을 다 비우기를 기다렸다가 인슐린 주사를 놓는다. 처음 한 달은 순한 아이였다. 옆구리 살을 잡아 올리고 바늘을 넣어도 잠깐 움찔할 뿐, 제 몫의 아픔을 다 아는 것처럼 가만히 견뎠다. 그런데 두 달쯤 지나면서부터 달라졌다. 주사기를 들고 안으면 몸을 바둥거리고, 작은 몸이 돌처럼 굳는다. 바늘이 무엇인지 이제 아는 것이다. 하루 두 번, 저를 아프게 하는 손이 저를 살리는 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이는 알 리 없다. 굳은 몸을 쓰다듬어 달래며 바늘을 넣을 때마다 내 마음 한구석도 함께 굳는다. 주사를 놓고 나면 안약을 넣는다. 빛을 잃은 눈에 약을 떨어뜨리며 나는 번번이 묻게 된다. 이 한 방울은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백내장 수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주치의는 신중하라고 했다. 수술을 한다고 삶의 질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아직 답을 정하지 못했다. 아이의 눈을 다시 열어 주고 싶은 마음과, 병을 안고 사는 몸에 또 하나의 고통을 얹는 일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 저울 양쪽에 앉아 내려오지 않는다. 사랑이 깊다고 답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 깊을수록 답은 더디 온다. 오 년 전 장군이를 떠나보낼 때도 그랬다. 이 년 동안 약봉지를 들고 병원을 오가면서도, 나는 무엇이 아이를 위한 길인지 끝내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곁에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저녁이면 도시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발소리들이 몰려온다. 앞이 보이지 않는 카카오도 소리로 나를 마중한다. 우리는 다시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아침에 걸었던 길을 저녁 빛 속에서 한 번 더 걷는 것이다. 그리고 밥을 먹이고, 주사를 놓고, 안약을 넣는다. 누가 보면 단조롭다 할 하루다. 나의 하루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책을 만드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아닌 이 되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되풀이가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붙들어 준다.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도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일어나야 할 이유가 있고, 몸이 무거운 저녁에도 돌아가야 할 걸음들이 있다.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아이들이 이 되풀이로 나를 돌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특별한 날을 기다리며 산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버려졌던 아이들과 살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삶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거르지 않는 날들로 지어진다는 것이다. 비가 와도 걷고 눈이 와도 걷는 길, 하루 두 번 놓는 주사, 빠뜨리지 않는 안약 한 방울. 사랑한다는 말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우리는 날마다 그 말을 걷고 있는 셈이다.

내일 새벽에도 또리의 발톱 소리에 눈을 뜰 것이다. 일곱 시가 되면 복남이가 먼저 문 앞에 나가 앉을 것이고, 나는 카카오를 안아 올릴 것이다. 보이지 않는 눈이 내 어깨 너머로 바람을 향할 것이다. 그 길을 나는 또 걸을 것이다. 안고 걷는 길이 있어서, 나의 하루는 아직 따뜻하다.

※ 이곳에 실린 글은 작가가 책으로 엮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원고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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