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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다시 자라는 것들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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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한결 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26-08-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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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막내의 머리에 손을 얹어 보았다. 손바닥 아래로 짧고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갓난아기의 배냇머리 같기도 하고, 이른 봄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 같기도 했다. 다 빠졌던 자리에서 다시 자라고 있는 머리카락이었다. 쉰둘의 막냇동생은 겸연쩍게 웃으며 오라비에게 고개를 내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머리를 오래 쓰다듬었다.

작년 여름, 막내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왼쪽 가슴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어릴 적 내 등에 업혀 잠들던 아이가, 어느새 쉰을 넘긴 그 아이가 암이라니. 몇 달 뒤 막내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전이는 없었고 수술도 잘되었다. 수술실 앞 복도에서 여든에 가까운 어머니와, 막내의 세 살 위 언니인 쉰다섯의 여동생과 나는 나란히 앉아 기다렸다. 어머니는 내내 두 손을 모으고 계셨다. 자식의 병 앞에서 어머니의 기도는 말이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대전에 사는 막내가 후속 치료를 받으러 서울까지 오가기는 무리여서, 치료는 대전의 상급종합병원에서 이어 가기로 했다. 서울의 담당 의사는 반드시 이 약제로 네 차례 항암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소견서를 보냈다. 막내는 그 힘들다는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입맛을 잃고, 손끝이 저리는 날들이었다. 그래도 막내는 견뎠다. 네 번의 주사를 다 맞고 났을 때, 이제 고비는 넘겼다고 우리는 안도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간 날이었다. 치료실의 의사가 서류를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항암 주사가 잘못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보낸 지시와 다른 약제가 네 차례 모두 투여되었다고 했다. 막내는 그 자리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다 견뎌 냈다고 믿었는데, 그것이 헛일이 되었다니. 담당 의사를 찾아가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의사는 서울에서 온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늘 하던 처방을 그대로 내렸던 모양이었다.

"제가 무엇에 씌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사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 앞에서 막내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원망도 항의도 눈물도 아닌, 그저 하얗게 비어 버린 마음. 한참 뒤에 막내가 꺼낸 대답은 짧았다.

"알겠습니다."

다시 항암 치료를 받겠다는 말, 그 캄캄한 시간을 한 번 더 건너가겠다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알겠습니다'를, 막내는 그렇게 조용히 내려놓았다.

주변에서는 다들 목소리를 높였다. 명백한 의료 사고이니 병원에 항의하고 밖에 알려 문제를 삼으라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막내와 우리 가족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차피 남은 치료를 이 병원에서 다 받아야 했고, 의사는 변명하지 않고 제 잘못을 시인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사람의 낯을 세워 주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하겠다고, 막내는 그렇게 정리했다. 어머니도 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남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날 우리 가족이 내린 결정이 옳았다고 함부로 말하지는 못하겠다. 세상에는 반드시 물어야 할 책임도 있는 법이다. 다만 잘못을 저지르고 고개 숙인 사람 앞에서 돌을 드는 대신 손을 내미는 길도 있다는 것을, 나는 막내에게서 배웠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일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제 마음을 미움으로부터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미움을 오래 쥐고 있기에는, 막내에게 남은 기운이 너무 귀했다.

막내는 다시 항암 주사를 맞았다. 한 번의 겨울을 그렇게 건넜다. 곁에는 어머니가 있었고, 언니가 병원을 오가며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나도 틈나는 대로 곁을 지켰지만, 밤을 새워 간호한 것은 늘 두 사람이었다. 자매가 손을 잡고 병원 복도를 걷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가족이라는 말의 무게를 새로 배웠다. 아픔은 나눌 수 없어도 곁은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였다.

이제 막내는 방사선 치료까지 마치고 후속 치료를 이어 가는 중이다. 밥을 지어 먹고, 짧은 산책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다. 한 번 어긋났던 시간 위에서도, 생명은 제 할 일을 잊지 않고 새순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긋나는 날이 온다. 믿었던 사람이 실수하고, 애써 견딘 시간이 헛일이 되고, 성한 줄 알았던 몸이 배반하기도 한다. 어긋남 자체는 우리가 고를 수 없다. 그러나 그 어긋난 자리에서 무엇으로 반응할지는 저마다 고를 수 있다. 막내는 원망 대신 '알겠다'는 말을 골랐고, 우리 가족은 항의 대신 곁을 골랐다. 그 선택이 병을 낫게 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마음을 다치지 않게는 해 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막내의 머리에서 손을 내리며 생각했다. 다시 자라는 것이 어디 머리카락뿐이겠는가. 무너졌던 하루도, 헛되이 흘렀다고 여긴 시간도, 언젠가는 저 짧은 머리카락처럼 보드랍게 다시 돋아날 것이다. 나는 그 봄을 믿기로 한다.

※ 이곳에 실린 글은 작가가 책으로 엮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원고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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